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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응원이 애국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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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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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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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응원이 애국이라고? /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5·31 지방선거가 끝나고, 지금은 월드컵 열기로 가득하다. 대학의 학기 말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월드컵이 시작되어 학생들은 난처함을 호소하고 있다. ‘월드컵 열기’가 ‘월드컵 광기’로 변하면서, 학생들로 기말 시험과 월드컵 응원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한국인도 월드컵에 홀려 있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열광이 월드컵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수들에게 열광하여, 가수 공연장을 쫓아다니는 청소년들도 열광에 휩싸여 산다.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에 염증을 느낀 청소년들에게 가수들은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학교에서 경험하는 냉기와 공연장에서 느끼는 열기는 너무나 다르다. 좋아하는 가수를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학교 생활의 지루함과 답답함을 모두 잊을 수 있다. 이른바, ‘오빠 부대’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오빠 부대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더 나아가 애국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월드컵 축구 시합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 무조건한선으로 인식되고, 국가의 위신과 위상을 드높이는데 일조하는 애국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웃 배려하지 않는 애국은 허울 좋은 애국
월드컵 출전 국가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을 ‘애국적인 일’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집단 정신착란이다. 애국은 추상적인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날 애국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 정신을 공유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것은 허울뿐인 애국이다.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구적인 애국이다. 과거 독재정권에 대한 복종을 애국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 그런 것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때의 유산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월드컵 응원에서 나타난 모습들은 애국과는 거리가 멀다. 열광적인 거리 응원이 끝난 뒤 모습은 너무도 추하다. 텅 빈 거리는 쓰레기로 뒤범벅이 되었고, 그 거리는 열광의 뒤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보여준다. 그 거리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월드컵 거리 응원에 참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집단에서도 나타난다. 기본적인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들, 아파트 가격을 담합해서 올리는 부녀회들 그리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기적인 모습이다.
축구는 현실 문제 잊게 하는 ‘마약’
월드컵 16강 진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삶의 질이 세계 16위 안에 드는 것이다. 월드컵 16강 진출은 국력이나 삶의 질과 무관하다. 월드컵 5회 우승국인 브라질 축구 대표팀은 이번에도 세계 최강 팀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은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불평등이 심하고 못사는 나라에 속한다. 인구 1억8천명의 브라질은 정말로 절망적인 나라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2001년 8.1% 1천4백58만명에 달했고,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22%로 4천만명에 이르렀다. 빈곤층은 무려 전체 인구의 47.8%에 달했다. 남미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빈곤과 불평등이 심한 나라이다. 한마디로 브라질은 삶의 질 차원에서 볼 때, 세계 최하류 국가인 셈이다.
2003년 대통령에 당선된 PT당의 룰라는 ‘Fome Zero(굶주림 제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브라질 월드컵 축구 대표팀은 ‘Fome Zero’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좌파 지도자 룰라의 빈곤 정책 지지를 표시하였다. 경제적·인종적으로 분열된 브라질 사회를 묶어주었던 유일한 끝은 축구였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실을 잊게 만드는 마약과 같다. 룰라는 현실을 직시하였고, 브라질 국가 대표 선수들도 룰라의 ‘Fome Zero’를 지지하게 되었다.
월드컵 열광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경쟁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져야 한다. 월드컵이 진정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열광이 아니라, 정신을 차렸을 때 허탈하게 만드는 순간의 열광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월드컵에 홀려 있는 지금, 무엇이 진정한 애국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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