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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숨통 조이는 국가기관 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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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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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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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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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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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숨통 조이는 국가기관 도청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장영수
안기부에 의한 도청이 나라를 흔들어 놓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행해진 것이지만, 그 내용은 지금 들어도 놀랍다. 비중 있는 언론사의 사주가 재벌기업의 하수인이 되어 정치권이나 검찰에 검은돈을 전달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는 것은, 설마 하던 사람들조차 분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수많은 시민단체에서 관련자에 대한 처벌이나 사퇴 등을 요구하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또한 정치권에서 진실규명을 외치고 있는 것도, 대다수 국민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정(政)·경(經)·언(言)의 유착 관계를 해소시킬 수 있는 대안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리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도청된 내용이 충격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청 자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혹시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도청을 통해 그런 중대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이런 일이 도청을 통해 밝혀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작은 욕심으로 큰일을 그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록 현재 드러난 사건이 충격적이고, 그 파급 효과가 큰 것은 분명하지만, 도청의 문제점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 정보사회란 정보의 의미와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사회, 정보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값진 정보의 획득과 활용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를 뜻한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는 또한 정보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된다.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국가기밀을 침범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무시할 경우에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
그러므로 정보란 ‘양날의 칼’과도 같다.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화해와 협력을 위한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개인과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정원을 상징하는 문구가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뀐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정보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에, 개인이건 단체이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에 접근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며,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수단의 동원도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수단의 불법성을 무시하고 수집된 정보의 내용에만 신경쓸 경우는 사실상 불법적인 정보수집을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도청이 무조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유괴범의 소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도청과 발신자 추적을 하는 경우는 통신비밀보호법 등에서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범죄 혐의와 무관하게 단지 정보의 획득만을 위하여 광범위하게 도청을 할 경우에는 정보의 흐름이 왜곡될 것이며, 나아가 불법적으로 획득된 정보가 불법적으로 이용될 경우에는 더 큰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기관이 도청(혹은 감청)을 할 경우에도 구체적인 범죄 혐의 또는 국가안보를 위한 필요성을 전제로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 정보기관이 이를 무시하고 불법에 앞장설 경우 그 문제는 심각해진다. 정보의 통제는 결국 자유의 숨통을 죄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빅 브러더를 현실 속에 끌어들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도청 녹취록을 통해 밝혀진 사실들에 대한 대책의 마련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문제와 더불어, 아니 그 문제에 앞서서 도청 자체에 대한 대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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