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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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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만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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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337
◈ '만세전(萬歲前)' - 염상섭 ◈

▶ 출전 : 1922년 7월, 신생활

▶줄거리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기 전해 겨울이다. 세계 대전이 막 끝나고 휴전 조약이 성립되어서, 세상은 비로소 변해진 듯싶고 세계 개조의 소리가 동양 천지에도 떠들썩한 때이다. 일본은 참전국이라 하여도 이번 전쟁 덕에 단단히 한 밑천 잡아서 소위 나리긴(誠金) 나리긴 하고 졸부가 된 터이라 전쟁이 끝났다고 별로 어깻바람이 날 일도 없지만은 그래도 또 한몫 보겠다고 발버둥질을 치는 판이다.

조선에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 전 해 겨울, 동경 W대학 문과에 재학하며 학기말 고사를 준비하던 나는 갑자기 귀국하게 되었다. 늘 앓던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으므로, 단골 카페로 정자(靜子,시즈꼬)를 찾았다. 나는 그녀를 앉혀 놓고 술을 마시고 목도리를 선물한다. 나는 아내가 죽어 간다는 소식을 받고도 이렇단 충격도 없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되어 하숙집을 들러 정거장에 나갔더니 시즈꼬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 속에서 그녀에게 선사받은 보자기를 끌러 보니, 술병과 먹을 것에 편지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영리한 계집애이므로 동정할 만하며, 카페의 접대부로서는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으나, 한 번도 그 이상 어떻게 해 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정자는 나의 이러한 생각에 불만을 토로했었다.
시모노세키까지 별일 없이 왔다. 시모노세키에 내리자 그저 조선 사람이란 트집으로 귀찮게 구는 형사들에게 크게 시달렸다. 나는 여기서부터 조선 사람이란 것을 유별나게 느끼게 되었다. 연락선에 탔을 때 사방에서, 특히 일본인들에게 식인종(食人種)이라고 조롱하는 소리와 경멸의 눈초리를 받게 되었고, 배 떠나기 전에 심문에서 협박까지 받게 되었다.
부산에 내려서도 또 형사에게 시달렸다. 나는 기진맥진되었다. 이윽고 거리로 나왔을 때 나는 조선 사람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그런 집은 없었다. 기차가 김천 역에 도착했을 때, 서울 집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김천 형이 금테 모자에 망토를 두르고 역에 나와 있었다. 나는 역에 내렸다. 나는 국민학교의 훈도인 형의 덕택으로 여기서는 형사의 수작을 받지 않게 되었다. 형 댁에는 새 형수가 한 사람 와 있었다. 형수가 아들을 못 낳아서 새로 맞아들였다고 한다. 어떻든 한 번은 내 의견을 꺼내 놓고 마는 나는 기어코 못마땅한 어조로 한바탕 불만을 터뜨렸다. 정말 딱한 일이다. 이윽고 형은 산소 걱정을 시작했다. 총독부 법에 의해서 지금부터 무덤은 공동 묘지밖에 쓸 수 없다고 해서이다. 얼마나 할 일이 없기에 산 사람 묻을 구멍부터 염려를 하고 있나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기차를 탔다. 차 속에서 나는 옛날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던 협잡꾼 김의관과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 나는 한동안 그의 생각을 했다. 영동 역에서 어떤 젊은 갓 장수가 탔다. 그 역시 공동 묘지 일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었다. 차가 심천에 대자, 헌병이 타더니, 차 속을 수색하였다. 그는 갓 장수를 데리고 내려갔다. "세상은 구데기가 끓는 무덤이다!" 나는 탄식했다.
서울역에 내렸다. 나는 인력거로 곧 집으로 갔다. 인력거 속에서는 가죽만 남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가엾은 생각은 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니, 혼수 상태에 빠져있던 병든 아내는 슬며시 눈을 뜨고 생그레 웃는 듯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삼사일 집에 들어박혀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침만 끝나면 술모임에 나가신다. 아내에게 양약을 쓰라고 권하면 펄쩍 뛰시는 아버지다. 때문에 나는 술이나 마시며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사이 시즈꼬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여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얼마 후 돈 백원을 넣어서 답을 보내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의 관계도 끊기로 했다. 그것으로 시즈꼬와의 지난적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어서였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나는 급히 장례를 치르고 집을 떠나기로 했다. 서울역에 나오니, 친구 병화와 을라가 나와 주었다. 차가 떠나려 할 때 큰집 형이 내게 다가서며 "내년에 속현(재혼)을 해야지."했다. 나는 "겨우 무덤에서 빠져 나왔는데요."하고 웃었다.

"겨우 무덤 속에서 빠져 나가는데요 ? 따뜻한 봄이나 만나서 별장이나 하나 장만하고 거무럭거릴 때가 되거든요 ! ... " 하며 웃어버렸다.

▶해설
이 작품은 1922년부터 23년에 걸쳐 <신생활>에 발표되기 시작하여 1924년 <시대일보>(1924. 4.6 - 6.7)에서 끝난 중편소설로서 원제는 '묘지(墓地)'이다. 3.1 운동 직전의 동경과 서울을 배경으로 하여 당대의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제시하고 있다. 일본 동경에서 서울까지 오는 3일간의 기행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910년대 한국 사회를 극명하게 그리고 있다.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의 생활을 '무덤'으로 규정한 것이다. ( 참고로 말하면 1931년에 발표된 작자의 [삼대]는 1920년대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서 회의적인 주인공 나는 도피를 선택함으로서 작가의 현실 인식이 투철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경향은 식민지 통치 본국의 수도인 동경을 탈출구로 삼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동경에서 출발하여 동경으로 돌아가는 여로를 택하여 '원점 회귀(原點回歸)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自傳的 小說)로 간주할 수 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것이나, 카페의 여급 정자와의 관계, 끊임없이 일본 경찰에 쫒기는 것 등이 그의 과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처음 <신생활> 지에 발표될 때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두 영문자(英文字)로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X 樣' 으로 '정자'는 'S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원본은 일부 수정되어 1924년 간행된 고려공사 판으로 보아야 할 듯. 그리고는 1948년에 다시 일부 개작되었다.

▶핵심정리
(주제) 일제 시대 암울했던 우리 나라 시대상.
일제 강점 하에서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비참한 생활상.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
(갈래) 중(장)편 소설
(경향) 사실주의 소설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구성) 전체가 9장으로 이루어짐, 순차적 구성
(성격) 사실적, 현실 비판적

▶ 염상섭(廉想涉,1987 - 1963)
본명은 상섭(尙燮). 호는 횡보(橫步). 서울에서 출생함. 일본 동경 게이오[慶應] 대학 문과 수학. 3.1 운동 때 독립 선언을 주도하고 투옥되어 학업을 중단했다. 1920년 귀국하여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 정치부 기자를 역임함. 만주에서 거주하며 <만선일보(滿鮮日報)> 주필겸 편집국장 역임. 문단에 관계하기는 <폐허>에 관계하면서부터이다. 중요 작품으로는 <개벽>에 발표한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와 [만세전](1925), [사랑과 죄](1926), [삼대](1931), [취우](1953) 등이 있다. 그는 전기에는 한국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후기에는 평면적 사실주의 수법으로 서민들의 생활 문제를 다루는 소설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