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공지사항 일정관리 자유게시판 방명록
현대시
현대소설
 

2006년 04월 06일
--
현진건-할머니의 죽음
--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950
(전략)
"저렇게 일어나시려니 좀 일으켜 드리지요."
나는 보다 못해 이런 말을 했다.
"안 된다, 일으켜 드릴 수가 없다. 하도 저러시길래 한 번 일으켜 드렸더니 어떻게 아파하시는지 차마 뵈올 수가 없었다."
"어째 그래요?"
나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이 반문에 대한 중모(仲母)의 설명은 더욱 놀란 것이었다.
할머니가 작년 봄부터 맑은 정신을 잃은 결과에 늙은이가 어린애 된다고, 뒤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 두어 달 전부터 물을 자꾸 청해 잡수시고 옷에고 요바닥에 함부로 뒤를 보았다. 그것을 얼른 빨아 드리지 못한 때문에 제물에 뭉켜지고 말라붙은 데다가 뜨거운 불목에 데이어 궁둥이 언저리가 모두 벗겨졌다. 그러므로 일어나려면 그 곳이 땅기고 배기어 아파하는 것이라 한다.
이 말을 들은 나는 할머니를 모로 누이고 그 상처를 보았다. 그 자리는 손바닥 넓이만치나 빨갛게 단 쇠로 지진 듯이 시커멓게 벗겨졌는데 그 위에는 하얀 테가 징그럽게 끼었고 그 가장자리는 독기를 품고 아른아른히 부르터 올라 있었다. 나는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양조모(養祖母), 양모(養母)가 부러워하던 늘은 듯한 자손은 다 무엇을 하고 우리 할머니를 이 지경이 되게 하였는가? 왜 자주 옷을 갈아 입혀 드리며 빨아 드리지 못하였는가? 이 직접 책임자인 계모가 더할 수 없이 괘씸하였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를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 위에도 말하였거니와 할머니가 이리된 지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벌써 몇 달이 되었다. 이 긴 시일에 제 아무리 효부(孝婦)라 한들 하루도 몇 번을 흘리는 뒤를 그 때 족족 빨아낼 수 없으리라. 더구나 밤에 그런 것이야, 일일이 알 수도 없으리라. 하물며 계모는 시집오던 첫날부터 골머리를 앓으리만큼 큰 병객이다. 병명은 의원에 따라 혹은 변두리머리라고도 하고 혹은 뇌진이라고도 하고 혹은 선천 부족(先天不足)이라고도 하였지마는 하나도 고쳐 주지는 못하였다. 삼십이 될락 말락하건만 육십이나 칠십이 다 된 노인 모양으로 주야 장천(晝夜長川) 자리 보전하고 누워 있는 터이다. 제 몸이 괴로우니 모든 것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나까지 아우르면 아버지 슬하에 아들만 넷이나 되건마는 지금 육십 노경에 받드는 어느 아들, 어느 며느리 하나가 없다. 집안이 넉넉지 못한 탓으로 사방에 흩어져서 제 입 풀칠하기에 눈코를 못 뜨는 형편이다.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쓴 물만 입안에 돌 뿐이다.
그 후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때 내가 할머니 곁에 갔을 적이었다. 할머니는 그 뼈만 남은 손으로 나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ㅇㅇ아, ㅇㅇ아."
할머니는 문득 나를 불렀다.
"인제는 다시 못 보겠다, 인제는 다시 못 보겠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인제 내가 안 죽니, 그런데 너, 내 청하나 들어 주겠니?"
"네? 무슨 말씀입니까?"
"나, 나 좀 일으켜 다고."
나는 눈물이 날 듯이 감동하였다. 어찌 차마 이 청을 떼칠 건가. 나는 다짜고짜로 두 손을 할머니 어깨 밑으로 넣으려 하였다. 이것을 본 중모는 깜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얘, 네가 왜 또 그러니. 일으켜 드리면 아파하신대두 그애가 그러네."
"그 때 약을 사다 드렸으니 그 자리가 이제는 아물었겠지요."
나는 데었단 말을 듣던 그 날 약 사다 드린 것을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였다.
"아니야, 아직 다 낫지 않았어. 오늘 아침에도 일으켜 드렸더니 몹시 아파하시더라."
나는 주춤하였다. 할머니의 앓는 것이 애처로웠음이다.
"어머니! 어머니! 가만히 누워 계셔요, 네? 일어나시면 아프십니다."
중모는 또 자상히 타이르듯 말하였다. 할머니는 물끄러미 나와 중모를 번갈아 보시더니 단념한 듯이 눈을 감았다. 한참 앉아 있다가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 때에 할머니가 눈을 번쩍 뜨며 문득,
"어데를 가?"
라고 물었다. 나는 주춤 발길을 멈추었다.
할머니는 퀭한 눈으로 이윽고 나를 쳐다보더니 무엇을 잡을 듯이 손을 내어 저으며 우는 듯한 소리로,
"서방님! 제발 나를 좀 일으켜 주십시오. 서방님, 제발 나를 좀 일으켜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었다.
"에그머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애가 이 아닙니까. 서방님이 무엇이야요?"
중모는 바싹 할머니에게 다가들며 애처롭게 알려 드렸다. 이 때 마침 할머니가 잡수실 배즙을 가지고 들어오던 둘째 형수가 무슨 구경거리나 생긴 듯이 안방을 향하고 외쳤다.
"에그, 할머니 좀 보아요! 서울 아우님더러 서방님! 서방님! 하십니다."
이 외침을 듣고 자부(子婦)들은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은 호기심에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또 할머니의 청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어떠한 나쁜 영향을 초치(招致)할지라도 아니 일으켜 드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요바닥 위로 반 자를 떠나지 못하여,
"아야야……."
라고 외마디 소리를 쳤다. 나는 얼른 들어올리던 손을 뺄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눕기 싫어하던 요 위에 누운 뒤에도 할머니는 앓기를 마지않았다. 적지 아니한 꾸중을 모시었다.
이윽고 조금 진정이 되더니만 또 팔을 내저으며 기를 쓰고 가슴을 덮은 이불자락을 자꾸자꾸 밀어 내리었다. 감기나 들까 염려하는 중모는 그것을 꾸준히 도로 집어 올렸다.
할머니는 손을 내밀더니 이번에는 내 조끼 단추를 붙잡아 당기었다.
"왜 이리 하십니까, 단추를 빼란 말씀입니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끄덕였다 하여도 끄덕이려는 의사를 보였을 뿐이었다. 나는 단추 한 개를 빼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자꾸 조끼의 단추와 씨름을 마지아니하였다. 나는 단추를 낱낱이 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그는 또 옷고름과 실랑이를 시작하였다.
"옷고름을 끄를까요?"
"응!"
나는 옷고름을 끌렀다. 끄른 뒤에 할머니는 또 소매를 잡아당기었다.
"왜 이리 하셔요?"
"버, 벗어라, 답답지 않니?"
여기저기서 물어 멈추려고 애쓰는 웃음이 키키 하였다.
나는 경멸과 모욕의 시선을 그들에게 던졌다. 자기가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하길래 남의 단추 끼운 것과 옷고름 맨 것과 저고리 입은 것조차 답답해 보일 것이랴! 여기는 쓰디쓴 눈물과 살을 더미는 슬픔이 있어야 하겠거늘, 이 기막힌 광경을 조소로 맞아야 옳을까?
나는 곧 그들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하되 나의 마음을 냉정하게 살펴본즉 슬프다! 나에게는 그들을 모욕할 권리가 없었다. 형수들 앞에서 앞가슴을 풀어 젖히라는 할머니가 민망스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였다. 환자를 가엾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속 어디인지 웃음이 움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내가 젊은이 패가 모인 이웃집 방에 들어갔을 제 무슨 재미스러운 일이나 보고 온 사람 모양으로 득의 양양히 이 이야기를 하고서 허리를 분질렀다.
거기에서는 할머니의 병세에 대하여 의논이 분분하였다. 그들은 하나도 한가한 이가 없었다. 혹은 변호사, 혹은 은행원, 혹은 회사원으로 다 무한년(無限年)하고 있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암만해도 내일은 좀 가 보아야 되겠는데, 나는 그 전보를 보고 벌써 돌아가신 줄 알았어. 올 때에 친구들이 북포(北布)니 뭐니 부의(賻儀)를 주길래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이게 웬일이냐 하니까, 그 사람들 말이, 돌아가셔도 자손들에게 그렇게 전보를 놓느니, 하데그려. 그래 모두 받아 왔는데, 허허허……."
그 중에 제일 연장자로 쾌활하고 말 잘하는 백형(伯兄)은 웃음 섞어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암만해도 오늘내일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는데…… 이거 큰일났는걸, 가는 수도 없고……."
"딴은 곧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아……."
은행원으로 있는 육촌은 이렇게 맞방망이를 쳤다.
"의사를 불러서 진단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부산 방직 회사에 다니는 사촌이 이런 제의를 하였다.
"옳지, 참 그래 보아야 되겠군."
아버지께 이 사연을 아뢰었다.
"시방 그물그물하시지 않나, 그러면 하여간 의원을 좀 불러올까."
의원은 아버지와 절친한 김 주부(金主簿)를 청해 오기로 하였다.
갓을 쓴 그 의원은 얼마 아니 되어 미륵 같은 몸뚱이를 환자 방에 나타내었다. 매우 정신을 모으는 듯이 눈을 내리감고 한나절이나 진맥을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앉는다.
"매우 말씀하기 안되었소마는 아마 오늘밤이 아니면 내일은 못 넘길 것 같소."
매우 말하기 어려운 듯이, 기실 조금도 말하기 어렵지 않은 듯이, 그 의원은 최후의 판결을 언도하였다.
"글쎄, 그래 워낙 노쇠하여서 오래 부지를 하실 수 없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아버지는 맞방망이를 쳤다.
가려던 자손은 또 붙잡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날 저녁부터 한결 돌리었다. 가끔 잡수실 것을 찾기도 하였다. 잡숫는 건 고작해야 배즙, 국물에 만 한 술도 안 되는 진지였다. 죽과 미음은 입에 대기도 싫어하였다. 그리고 전일에 발라 드린 양약(洋藥)의 효험이 나서 상처가 아물었던지 자부와 손부에게 부축되어 꽤 오래 일어나 앉게도 되었다.
그 이튿날이 무사히 지나가자 한의(韓醫)의 무지를 비소(誹笑)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환자의 수명이 어느 때까지 계속될 시간 아는 데 들어서는 양의(洋醫)가 나으리라는 우리 젊은 패의 주장에 의하여 의원 원장으로 있는 천엽 의학사(千葉醫學士)를 불러오게 되었다. 그는 진찰한 결과에 다른 증세만 겹치지 않으면 이삼 주일은 무려(無慮)하리라 하였다.
"그래, 그저 그럴 거야. 아직 괜찮으신데, 백주에 서둘고 야단을 했지."
하고, 일이 바쁜 백형(伯兄)은 그 날 밤으로 떠나갔다.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우리가 집에 돌아오니까 할머니 곁을 떠난 적 없는 중모가 마당에서 한가롭게 할머니의 뒤 흘린 바지를 빨고 있다가 웃는 낯으로 우리를 맞으며,
"할머님이 오늘 아침에는 혼자 일어나셨다. 시방 진지를 잡수시고 계시다. 어서 들어가 뵈어라."
나는 뛰어들어갔다. 자부와 손부의 신기해 여기는 시선을 받으면서 할머니는 정말 진지를 잡숫고 있었다.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할머니, 어떻게 일어나셨습니까?"
할머니는 합죽한 입을 오물오물하여 막 떠 넣은 밥 알갱이를 삼키고,
"내가 혼자 일어났지, 어떻게 일어나긴. 흉악한 놈들, 암만 일으켜 달라니 어데 일으켜 주어야지. 인제 나 혼자라도 일어난다."
하며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어제 의원이 왔지요. 인제 할머니가 곧 나으신대요."
"정말 낫겠다고 하든, 응?"
하고 검버섯 핀 주름을 밀며 흔연(欣然)한 웃음의 그림자가 오래간만에 그의 볼을 스쳤다. 나의 눈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날 밤차로 모였던 자손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나도 그 날 밤에 서울로 올라왔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말갛게 개인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고 아른아른한 아지랑이가 그 하늘거리는 깁 올로 봄 비단을 짜내는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나는 깨끗하게 춘복(春服)을 차리고 친구 몇몇과 우이동 앵화(櫻花)구경을 막 나가려던 때이었다. 이 때에 뜻 아니한 전보 한 장이 닥치었다.
"오전 3시 조모주 별세"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작가 : 현진건(1900∼1943)
구성 : 시간의 순차적 구성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배경 : 1920년대 시골
제재 : 할머니의 죽음
주제 : 인간의 허위 의식 풍자
출전 : 『백조(白潮)』(192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할머니의 임종을 중심으로 죽음을 거부하려는 할머니의 허망한 몸짓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이기적이고 작위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한 단편 소설이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자손들이 모두 모인다. 그러나 진심으로 할머니의 쾌유를 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윤리의 사슬에 묶여 마지못해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지극한 효성을 보이는 중모(仲母)의 행동도 나의 눈에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속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가 위태로운 고비를 넘기고 죽음이 시일을 끌게 되자 자손들은 바쁜 일을 핑계 삼아 모두 흩어지고 할머니는 외롭게 죽는다.
이 소설의 묘미는 구성적 측면에서 돋보인다.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로 시작하여 '오전 삼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로 끝나는 구성이 매우 탁월하다.


★전체 줄거리

3월 그믐날 '나'는 시골 본가로부터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시골로 내려간다. 곡성이 들릴 듯한 사립문을 들어서니 할머니의 병세는 이미 악화되어 있었다. 여든을 둘이나 넘은 할머니는 연로한 나이 탓에 작년 봄부터 기운이 쇠잔하여 가끔 가물가물했었다. 멀리 떠나 있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 긴장된 며칠을 보내는 가운데 집안 내의 효부로 알려진 중모(仲母)는 할머니 곁에서 연일 밤을 세워 가며 할머니를 간호하고 빨리 기운을 회복하길 빌며 염불을 외운다. 할머니가 겪는 고통과는 달리 빨리 끝장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자손들은 직장으로 인해 무작정 눌러 있을 수도 없어 한의원을 불러 진맥을 시킨다. 오늘 내일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과는 달리 하루 하루가 무사히 지나자 양의(洋醫)에게 다시 진찰을 시킨다. 그러나 할머니의 병세는 호전되었고, 몇 주일은 염려 없다는 말에 안심한 자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떠나고 '나'도 할머니에게 곧 완쾌되실 거라고 위로하며 서울로 올라온다. 그러나 어느 화창한 봄날, 우이동 벚꽃놀이를 막 나가려는 때에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