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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속담
 

2006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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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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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수
720
◐관포지교(管鮑之交)◑

[管:성관/ 鮑;성포/ 之:갈지/ 交:사귈교]

▶관중(管中)과 포숙아(鮑叔牙)의 사이와 같은 사귐이란 뜻으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변치 않는 우정을 지킨 둘도 없는 친우 관게를 나타내는 말.

▶出典:<사기>˙<춘추좌씨전>

춘추 시대 제나라의 중신 관중과 포숙아는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 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재상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훗날 관중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할 때에 포숙아와 같이 장사를 한 일이 있다. 이익을 나눌 때에 내가 좀더 많이 가졌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이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계획한 일이 도리어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 결과가 되었으나 그는 나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번번히 물러났지만 그는 나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 내게 시운(時運)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했을 때 나는 염치 없이 죽지 못하고 포박당하는 치욕을 당했으나 그는 비겁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내가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치욕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


* 관중: 춘추 시대 제(齊)나라의 재상. 이름은 이오(夷吾),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 환공을 중원의 패자로 만듦.

* 포숙아: 춘추 시대 제나라의 현신. 친구 관중을 환공에게 추천하여 재상으로 삼아 환공의 패업을 달성시켰음.

* 환공: 재위 기원전 685-643년 춘추 시대 제나라의 15대 군주. 성은 강(姜). 이름은 소백(小白). 패왕(覇王)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