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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속담
 

2006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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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묵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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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수
887
◐공석묵돌(孔席墨突)◑

[孔:성 공/ 席:자리 석/ 墨:성 묵/ 突:굴뚝 돌]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질 틈이 없었고 묵자의 굴뚝은 검어질 수가 없었다(孔席不暇煖 墨突不得黔)”라는 말

▶出典:한유(韓愈)의 <쟁신론(諍臣論)>

공석은 공자가 앉는 자리로 부들이나 골풀로 엮은 자리를 말한다. 중국의 고대에는 자리를 깔고 앉는 습관이 있었다. 이 자리에 앉는 법은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없어졌다.
묵돌은 묵자의 집 굴뚝을 말한다.
공자는 일찍이 노나라에서 정치 개역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56세 때에 노나라를 떠나 위(衛) ․ 송(宋) ․ 정(鄭) ․ 진(陳) ․ 채(蔡) ․초(楚) 등 여러 나라를 유세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69세 때에 14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는 문헌 정리와 제자 교육에 전념했다.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질 틈이 없었다”란 공자의 이러한 생애를 말해준다.
묵자도 공자와 거의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며, 묵가(墨家)라 불리는 파의 시조이다. 묵자도 초 ․ 제 ․ 위 ․노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유세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비전론자(非戰論者)로서, 대국인 초나라가 소국인 송나라를 공격한다고 하자 제자 300명을 이끌고 송나라에 가서 방비를 굳히고 초나라의 침략을 단념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성어(成語)의 출전인 한유의 <쟁신론> 외에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戱)>에도 “공석불난 묵돌불검(孔席不煖墨突不黔)” 이라 하였고, 회남자(淮南子)의 <수무훈(修務訓)>에는 “공자무검돌 묵자무난석(孔子無黔突 墨子無煖席)”이라고 했음. 이 모두가 도를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