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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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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 - 석상(石像)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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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수
831
석상(石像)의 노래
- 김관식

노을이 지는 언덕 위에서 그대 가신 곳 머언 나라를 뚫어지도록 바라다보면 해가 저물어 밤은 깊은데 하염없어라 출렁거리는 물결 소리만 귀에 적시어 눈썹 기슭에 번지는 불꽃 피눈물 들어 어룽진* 동정* 그리운 사연 아뢰려하여 벙어리 가슴 쥐어뜯어도 혓바늘일래 말을 잃었다 땅을 구르며 몸부림치며 궁그르다가 다시 일어나 열리지 않는 말문이련가 하늘 우러러 돌이 되었다
(시집 󰡔김관식 시선󰡕,1957)

* 어룽진 : 얼룩진.
* 동정 : 한복 저고리 깃에 꿰매어 다는 헝겊으로 대개 흰색이다.

< 감상의 길잡이 >
김관식은 한문과 동양의 고전에 능통하여 동양인의 서정 세계를 동양적 감성으로 구상화함으로써 특이한 시풍을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세련된 시어와 밝은 동양적 경지로 승화하려는 높은 정신의 추구를 엿볼 수 있으며, 서양 외래 사조를 배격하고 동양적 예지의 심오한 세계로 몰입하여 그 경지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세속적 생활 방식을 무시한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던 그는 결국 가난과 질병으로 36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석상을 소재로 하여 한없는 그리움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너무나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돌이 되었다는 이 시의 내용은 백제 가요 <정읍사>나 신라 시대에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설화와 접맥되어 있다. 또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김소월의 <초혼>에서도 그와 유사한 상황이 그려져 있다.
이 시는 행이나 연 구분은 물론, 구두점까지도 철저히 배제시킨 산문시이다. 이러한 형식상 특성은 독자에게 거침없이 작품을 읽게 함으로써 그리움으로 인해 돌이 되었다는 작품의 내용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효과가 있다.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첫 문장은 노을이 질 때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심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대 가신 곳 머언 나라’는 임이 화자 곁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떠났음을 알게 해 준다. 둘째 문장은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출렁이는 물결 소리’는 화자가 어느 바닷가에 서 있음을, ‘동정’은 화자가 여성임을 알게 해 준다. 셋째 문장은 극한적 절망 때문에 화자가 돌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임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과 눈썹 가장자리에 번지는 피눈물, 피눈물에 얼룩진 동정, 그리움을 전할 길 없는 답답한 마음, 맺힌 한으로 돋아난 혓바늘 등으로 말을 잃은 화자는 결국 ‘땅을 구르며 몸부림치며 궁그르’는 절망의 극한 속에서 말문이 열리는 대신, 하늘을 우러러 돌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 ‘돌’은 임에 대한 화자의 사무친 그리움의 돌이며 슬픔과 한이 응결된 돌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그리움이 사무친 나머지 사람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은 우리 나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설화는 먼 옛적 신라의 박제상과 그 아내의 이야기에서부터 나오는데, 그러고 보면 사무친 그리움과 돌의 차갑고 굳은 성질 사이에는 어떤 연상적 관계가 있는 듯하다. 김소월의 「초혼」에도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구절에서 나타난 바 있다. 위의 작품 또한 석상(石像)을 한없는 그리움이 쌓여 한(恨)으로 맺힌 덩어리로 노래한다.
작품의 시간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에서부터 밤까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전체의 분위기를 전개해 가는 데 필요한 것일 뿐 한 사람의 그리움이 사무쳐서 마침내 돌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그(작중 화자)는 `그대 가신 곳 머언 나라'를 뚫어지도록 바라본다. 이 `머언 나라'는 어디일까? 그곳은 어쩌면 `죽음의 나라' 혹은 돌아올 가망이 없는 먼 땅일 것이다. [해설: 김흥규]